☆ 유 대 광 야 ☆
저 건너 사해가 흐릿하게 보인다
마치 줄이 처진듯한 모습은
양들이 같은 길로 따라 다니며 풀을 뜯어 먹기 때문에 생긴 길이라고 한다.
기 도
찬 송
묵 상
어린 나귀새끼와 베두인 아이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타셨던 나귀새끼와 비슷할 것 같다.
유대 광야에는 대부분이 이 풀꽃들이었다. 십자화꽃으로 모양이나 크기및 색상이 우리나라 무꽃과 비슷하다.
성지동식물 8
식크란(노랑사리풀)
☆ 유대광야 ☆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친 그 광야
이 유대광야는 세례요한이 활동했던 빈들이요,
예수님이 40일간 금식기도 하셨던 곳으로 시험을 당하신 곳이며,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르내리던 길이었으며,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숨어들었었고, 이후 은둔수도사들의 수도생활의 무대다.
유대광야는 비가 오지 않는 6~7월 약 40일 여름에는 풀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광야의 골짜기에는 물도 있고 나무도 자란다.
겨울에는 비가 내리는 우기가 되어 풀이 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우기( 2월)여서 우리나라 처럼 온통 초록색은 아니지만, 풀이 자라고 들꽃도 볼 수 있었다.
비가 드물기 때문에 베두인들이 천막생활을 하면서 목자들은 우기인 겨울에 양과 염소를 이끌고 유대 광야에 가서 먹이는 목축업을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살기 어렵다.
땅은 사막처럼 모래밭이 아니고 매우 딱딱해서(세노니아 백악질이라고 부른다), 물이 흡수되지 않아 비가 오면 그대로 홍수가 저서 넘처 흐르고,
비가 오지 않으면 완전히 바짝 말라버려 와디(Wadi-지리적 명칭)를 형성하며,
그래서 유대 광야는 고지, 둥근 언덕, 극적인 벼랑, 깊은 협곡, 낭떠러지 등이 많아서 와디켈트라고 한다.
유대광야는 서쪽 경계인 유대 언덕 지역의 높이는 대략 750-900m에 달하는 반면
동쪽 경계인 열곡 중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사해는 해수면 아래 해발 -400m이므로 유대 광야의 고도 차이는 약 1100-1300m에 이른다.
계곡을 따라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길이 96㎞, 폭 16㎞의 남북으로 형성된 V자 형태의 거대한 황무지다.
유대 산지의 동쪽 경사지는 사해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즉 유대산지에서 사해까지의 직선거리가 25km인데 높이차이가 1200m나 된다.
이 경사는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단층을 거치며 내려오긴 하지만 대부분 급경사이다.
높이가 300m이상되는 단층이 5개나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절벽형의 급경사지로 인하여 유다광야에는 케논형태의 깊은 계곡들이 형성되어 있다.
고도와 강수량의 차이로 인해서 예루살렘과 유대 광야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감람산 정상을 넘어서 동쪽으로 향하면 고도와 강수량의 차이로 인해서 산하나 사이인데도 지형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강수량을 비교하면 유대 광야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유대 언덕의 강수량은 355~710mm인 반면,
열곡으로 내려가면서 서서히 줄어들어 사해의 강수량은 100mm도 채 되지 않는다.
유대 광야의 절반이 넘는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200mm를 넘지 않는다.
유대 광야는 다른 광야나 사막과 달리 역사적으로도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다.
유대광야의 폭이 16km 정도로 작아서 인근의 유다산지와 불과 수km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생활 중심지와 인접해있으나, 이곳은 험준하고 다른 지역을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발전되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회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나, 삶의 중심지로부터 축출된 사람들,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거주 지역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역이 되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였고(삼상 22:1-27:6),
세례 요한이 이곳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으며(마 3:1-2),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시험을 받으셨고(마 4:1).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셨으며,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위기를 만나게 될 때 마다
유대 광야는 마카비 전쟁이나 마사다의 항쟁 등과 같이 국가를 위하여 싸우는 애국자들의 마지막 저항지가 되었다.
유대 광야는 “빈들”(눅 1:80), “광야”(마 4:1)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해 사본으로 유명해진 에세네파는 유대교가 타락했다고 생각해서 유대 광야, 특별히 사해 서북쪽에 있는 쿰란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는데,
매우 메마른 지역이기 때문에 양피지에 히브리어 성경을 기록한 사해 사본이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 미드바르"라고 한다는데 "미"는 "어디서"라는 의미이고 "드바르"는 "말씀"이랍니다
광야에는 뜨거운 태양과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 나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곳,
그래서 온전히 하느님께만 의지해야 하는 곳....
이 광야에서 무었을 보았는가... 무었을 들었는가... 무었을 느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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