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2

성지순례 2014. 11. 30. 15:51

☆☆ 마사다(Masada) ☆☆

 

마사다 요새에 올라가니 넓은 광장이 펼처진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망루가 보이고 왼쪽 멀리 사해가 흐릿하게 보인다.

 

 

사우나 유적이라고...?

검은 줄로 표시된 아래 부분은 발굴된 유적이고 그 윗부분은 복원했다고 한다.

자부심....!

 

식량등의  창고...?

여러 시설물이 있고 넓다

 

 

 

유대인 회당 시나고그라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멀리 사해가 보인다.

올라가서..,

내려오기 전에

 

☆ 마사다(Masada)

마사다 (Masada, 히브리어 מצדה, 뜻은 요새),  마사다요새 (히 Horvot Mezada)

 

높이 434m의 바위산 위에 있는 마사다 요새는 길이 최장 620m, 너비 120m에서 너비 320m이고 둘레 1.300m에 이르는 산봉우리 위의 평지이며,

주변은 약 100미터 깊이의 깊은 협곡이 둘러싸고 있으며, 절벽과 급경사로 이루어진 지형을 이용한 완벽한 천연 요새가 되었다

동편 입구로 들어서면 긴 방호벽으로 둘러싸인 서쪽 절벽방향이 마주 보이고, 서쪽 절벽은 약 100m로 매우 가파른 난공불락의 지형이다.

기원전 37년 헤롯 대왕이 설계하던 당시부터 은신처로 여기고 만든 요새이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쉽사리 침입하지 못하도록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길이 약 1.3km의 방호벽을 쌓았으며 방호벽은 5.4m의 높은 성벽으로 평균 높이는 3.7m이다.

방호벽에는 감시를 위한 38개의 망루들을 곳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주후 66년에 로마에 항거하는 제 1차 유대인 반란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을 때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주전 515년에 건축하였던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불타 없어지게 되며 성전 서쪽벽인 통곡의 벽만을 남겨놓고 모두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 때 최후까지 성전에 남아 저항하던 유대인 열심당원 약 960명이 마사다 요새에 들어가 엘르아잘 벤 야일(Elazar ben Yair)의 지휘아래

이곳을 근거지로 저항을 계속하며, 이들이 빈번하게 로마 정착촌을 습격하여 피해가 커지자 로마 총독 실바(Lucius Flavius Silva)는

로마 제 10보병군단을 이끌고 마사다 요새 주변에 8개의 진지를 구축한 뒤 공격을 시작했다.

요새에는 풍부한 물과 충분한 곡식이 저장되어 있었으므로 로마군의 포위 공격에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는 저항의 불씨를 남겨둘 수 없어서 마사다를 함락시켜려 하였지만

깍아지른 듯한 절벽에 있는 마사다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여러 차례 공격이 계속 실패하자

로마군은 요새를 포위하고 약 6천명의 유대인 노예를 동원하여 서쪽 측벽에 토성(누벽壘壁)을 쌓기 시작 하였으며

주후 73년에 누벽이 완성되자 로마군은 경사로 위로 강력한 투석기와 성문 파괴용 대형 망치를 장착한 공성탑을 끌어올려 약 3개월간의 공격으로

73년 4월 16일 요새의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공격 시작 3년만에 성벽을 허물고 성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마사다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지도자 야일(Yair)은 적의 포로가 되어 굴욕을 당하느니 자결할 것을 호소하였으며,

 열심당원들은 자결하기로 하고 이에 동의한 저항군은 유대인 율법은 자살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 사람씩 조를 짜서 제비뽑기를 하여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이고

다시 남은 사람 중 열 사람씩 조를 짜는 방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계속하여,

동이 트기 전에 남은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하였다고 한다.

마사다에 입성한 로마군은 자결한 967구의 시신만을 보게 되었고,

수색에서 발견한 살아남은 사람은 지하 동굴에 숨어있던 두 명의 여인과 다섯 명의 아이들뿐이었다.

로마군은 그 처참한 자살 광경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당황하였으며 발견된 여인과 어린이들도 죽이지 못했다고 하며,

이들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증언함으로서 마사다 항전의 처참한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식량창고를 제외한 요새안의 모든 건물이 방화로 불에 탔고 자살한 시체들뿐이었다.

다른 건물을 모두 불에 태우면서도 식량창고만은 남긴 것은 자신들이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살한 것이지 식

량이 없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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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ny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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