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죽음소식을 들으시고, 홀로 잠시 빈들에 가셨다가

큰 무리를 보시고 나오셔서 병을 고치시고, 오천명을 먹이시고는

떠나는 많은 제자들을 보시며, 열두제자만 데리고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시며

준비하시다

.

.

.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교회를 말씀하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예고하신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베드로 신앙고백

공원 입구

헬몬산으로 부터 땅속으로 흘러 솟아오르는 풍부한 물

판신전 동굴이 보인다

전경

판신전 동굴, 이 앞에 헤롯이 건설한 아우구스투스 신전이 있었다 한다.

 

판과 님프요정의 유적

베드로의 신앙고백 장소로 추정하고 찬송하다.

이곳을 발굴하고 연구한 학자들은 예수님 방문시에는 자연상태였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제우스 신전 유적

제우스 신전 기둥

 

발굴한 유적들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 16:15-16)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신앙고백을 한 가이사리아 빌립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신앙고백을 기념하는 교회나 기념물은 아무것도 없다.

글을 읽을 수 없어 그런지 간단한 안내 동판조차도 없어 보인다.

 

               말씀 :  마태 16:13~23, 마가 8:27~34, 요한 6:66~71

 

바요나 시몬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그 후로  베드로(반석)라 불리게 되었고

예수님께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셧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곳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며,

이스라엘 땅에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 되심을 선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포하신다.

이 신앙 고백이 있는 곳이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20Km

갈릴리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저 있다.

텔 단으로 부터는 동쪽으로 약 4km 거리의 헬몬산 아래에 있다.

즉 요단 계곡의 상부 북쪽 끝 지역으로 헤르몬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동편 지역에 해당되어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골란고원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고지대이지만

땅이 비옥해서 옛날부터 소들이 살찌는 곳으로 알려저 있으며

구약 시대에는 이곳을 바산(Bashan)지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바니아스(Banias)로 불린다.

 

헬몬산의 눈이 녹은 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땅속을 흐르다가

이곳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수정 같이 맑은 물이 솟아올라  요단강의 발원지가 되어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 가이사랴 빌립보 : 바니아스의 간추린 역사 **

 

가나안 시대(기원전 2150~1200)에 이곳에 자연신을 모시는 성소였고, 헬네니즘 시대(기원전 332~63)에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게 되자 그리스 문화는 동방과 그의 지배 지역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풍부한 수량과 맑은 물이 솟는 샘과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이곳 파네온(Panaeon)에도 자연의 세계에서 사는 신인 판(Pan)신전이 건설되었다.

"(Pan)" 이라고 부르는 그리스 신의 이름은 파온(Paon,목축)이 도리아 식으로 줄어든 것이라 하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에 가까운 다산의 신이며 판의 아버지는 헤르메스이고 어머니는 페넬로페라이다.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이고 다리와 꼬리는 염소 모양이며 이마에 뿔이 있다.

 높은 언덕에 자주 나타나며 주된 일은 소떼와 양떼를 키우는 일이었다고 하며 이신을 모시는 곳이었다.

 

바니아스라는 지명은 "(Pan)" ()의 이름 파네아스(Paneas) 또는 파메아스(Pameas)에서 생겨난 것으로

"(Pan)" ()의 이름에서 유래 된다. "P" 발음을 못하는 아랍인들이 "B" 로 잘못 발음하여 바니아스(Banias)가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제국은 바니아스를 정복하고 헤롯대왕의 왕국으로 합병시켜 주었으며

이에 헤롯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근처에 흰 대리석으로 신전을 지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첬다고 한다.

기원전 4년에 헤롯이 죽고 난후, 그의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배되며 북쪽과 골란고원은

셋째아들 헤롯 필립(Philip)에게 주어졌는데

그는 기원전 2년에 이곳을 확장하고 아름답게 꾸민 후 수도로 삼고, 그는 로마 황제 가이사리아에게 헌정하고

황제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합처서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로 이름을 고처 불렀다고 한다.

 

기독교가 확장되면서 4세기 초 비잔틴 시대에는 이교도인 판신에 대한 의식이 중단 되고 따라서 그 신전들은 버려지게 되었으며,

4~5세기 까지 기독교인 들이 거주하고 공동체가 유지되었다 하나,

7세기에 이슬람이 정복한 후에는 계속하여 바니아스는 쇠퇴하였고, 기독교공동체마저 사라지고 단지 조그마한 촌락이 되었다.

그 후 지배권이 십자군과 이슬람 사이를 오가다가 1967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장악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고학의 발굴에서 1994년 이 신전의 정확한 연대를 밝혀주는 자료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신전 건축양식과 장식들로 미루어 볼 때 신전 건축 시기는 1세기 중엽으로 연대 추정이 된다고 하고

암반을 파고 만든 제단의 안쪽 부분을 장식하는 기법이 아우구스토스 황제 시대의 신전 건축양식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헤롯이 건축한 신전은 그 건축연대가 예수님 시대라기보다는 그 이후에 세워졌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는 자연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추정하게 된다고 하며

또한 고고학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문헌조사와 발굴 결과를 종합하여 가이사랴 빌립보의 발전과정을 연구한 결과

예수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의 바니야스의 모습은 신전이 없었으며

도시의 모습보다 작은 시골 마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고 추정된다는 발굴조사팀의 의견이라고 한다.

더 많은 발굴과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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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ny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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