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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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에서 내려다 본 모습
온 종일 비가 내렸다. 이상하게....
황금돔과 닫혀있는 황금문
통곡의 벽
전망대 앞에서
나귀타시고 예루살렘에 마지막으로 입성하신 길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Jerusalem]☆
(히) Yerushalayim (아) Bayt al-Muqaddas/al-Quds.
BC 3000년 경 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은 라틴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히브리말로 ‘예루살라임’이라고 부르며 평화의 근원, 혹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하나님를 모셨던 지성소를 뜻한다고 한다.
다윗왕이 약 3000년 전(BC 1000)에 여부스족으로 부터 시온 산성을 빼앗으니 다윗 성이더라.(삼하5:6~12)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가 도시 곳곳에 있으며, 서로 공존하는 도시이다.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이후, 구시가지와 동예루살렘 나머지 지역을 합병한 요르단과 서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로 분할되었다가,
1967년의 전쟁으로 동예루살렘도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분할할 수 없는 영구적인 수도라고 주장해왔으며,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 사이에 항상 쟁점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사해에서 서쪽으로 약 26㎞, 지중해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57㎞ 떨어진 이스라엘 중심부에 위치하며 지중해 연안 평야와
요단강사이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대협곡이 시작되는 해발 760m의 산악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 기후의 영향을 받으면서 아열대와 반건조의 혼합형 기후로 여름은 온난 건조하고 겨울은 춥고 습하다.
☆예루살렘 성전☆
모리아산 즉 성전산 위에 세워진 성전
성서에는 예루살렘에 세 성전이 있었다.
(ⅰ)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Solomon's Temple)으로
다윗이 성전을 건설하려고 준비 하였는데(삼하7장, 왕상5:3~8:17,대상22:14),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아서,
모든 준비만 하고 그 아들 솔로몬의 손에 의해 건설되었다.
솔로몬은 제위 5년에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위에 성전 건축을 착공하여, 7년 만에(BC 959) 준공을 보았다(왕상 6:37~38,952년 완성).
이 모리아산의 바윗돌, 즉 성전산 바윗돌의 크기는 길이가 약 18m, 폭이 13m, 높이는 1.25~2m 가량 된다.
이 성전은 BC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놋 바다, 물두멍의 받침 및 성전내의 집기는,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갔다고 한다(왕하 25:13-17,렘52:13,17-23).
다윗왕은 하나님의 거절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나서도 힘과 정성을 다하여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만 그의 능력을 행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이 계심과 그를 사용하시는 신비로움이 경외롭기도 하다.
(ⅱ)두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의 성전(Zerubbable's Temple)으로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기원전 538에 풀려나면서 고레스왕은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파괴된 성전 재건축을 하도록 하였으며,
스룹바벨의 지휘 하에 새로운 성전의 건축이 기원전 535년에 시작되어, 어려운 상황에도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와 도움으로 기원전 516년에 완성되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하여 규모도 적고, 볼품도 없는 것이었으나 전유대인의 종교적 중심이 되었다.
BC 62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ius)에게 성전이 유린되고 파괴되었다.
(ⅲ)세 번째 성전은 헤롯의 성전(Herod's Temple)으로서,
BC 37년 헤롯대왕이 통치하게 되자, 파괴되어 초라하게 남아있던 제2성전을 BC 20년경부터 크고 화려한 건축물로 증축하기 시작하여 대부분은 10년 이내에
거의 완성하였으며, 그 후에도 추가 공사는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헤롯은 성전 본전의 크기는 포로귀환 후의 재건한 성전 그대로하고,
또 그 전반적인 것도 바꾸지 않았으나, 헤롯 성전은 원래의 소규모 성전위에 추가 증축하고, 주위의 골짜기와 성전 구릉과의 사이를 메우고,
동과 서로 높은 돌담을 쌓아, 성전뜰의 넓이를 솔로몬시대의 거의 2배로 확장하였다.
성전은 높은 대지 위에 세워지고, 원주와 아름다운 문으로써 둘러싸이고, 빛나는 대리석으로 건축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멀리서도 볼 수가 있었다.
현재도 남아있는 성전 뜰 남동쪽의 거대한 돌담(현 통곡의 벽)의 커다란 석재를 쓴 튼튼한 하부구조를 보면서 큰 공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성전은 헤롯시대 이후는 거의 외국의 지배하에 놓여졌다.
로마군에 대한 대반란이 이러나자 로마군은 유대교도의 거점으로 되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하기 위하여 오랜 전투와 큰 손실 후에야 성전을 점령하고,
기원 70년에 성전을 불살라 버렸으며, 그 후에도 유대교도의 반란이 거듭되자 로마인은 135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유대교도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몰아냈다.
로마가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의 명령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지로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성묘 등에 최초의 교회가 건축되었으며, AD 324~640은 비잔틴 시대로 아름다운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가 많이 건축되었다.
614년에는 페르시아가 비잔틴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많은 교회를 불사르고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갔다.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인이 이곳을 함락시켰으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비잔틴제국에서 이탈하여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아득한 회교사원(아크사의 마스지드)’을 지었으며,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 때에
AD 691년 다윗이 제단을 마련한 곳에 바위사원을 건립하였는데 현재 바위사원에 있는 큰 바위는 무함마드가 승천의 장소라면서 신성시하고 있다.
이때부터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서로 상대편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1099년에는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며,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187년 이집트에 아이유브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십자군을 물리치고 이를 점령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탈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516년 말에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시리아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그 지배하게 되었고,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투르크의 쉴레이만 1세 때 축조된
것인데, 투르크령 시대에 예루살렘은 점차 쇠퇴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인구가 약 1만명 정도로 감소하였다.
19세기 중엽부터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이 투르크에 압력을 가하여 이곳의 성지 보호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말에는 투르크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가자
그 수도가 되었다. 그후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영국외상 밸푸어선언에 따라 유대교도의 이민이 격증하였으며, 아랍족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도와 아랍 각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이듬해 2월에 이스라엘국이 성립하였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하여 각각 한 쪽을 영유하였는데, 1967년 6월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의 동부마저 점령하였다.
☆ 통곡의 벽 ☆
솔로몬 이후에 헤롯왕이 세번째 다시 성전을 지었지만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파괴된 후는 거의 외국의 지배하에 놓여졌다.
이 통곡의 벽은, 솔로몬 이후에 헤롯왕이 다시 자은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고 불태워지면서 남은 서쪽 성벽(Western Wall)이라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앞에서 슬프게 울었던 곳이라 하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벽을 두드리면서, 울면서 기도를 한다.
커다란 석재를 쓴 이 거대한 돌담은 순례지가 되어있어 지금도 볼 수가 있어서 우리도 찾아가 보고 묵상의 시간을 가젔다.
☆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 ☆ 이스람사원 모스크
이전 성전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세워진 헤롯 성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으로 성전으로의 기능을 못하고 죽은 건물로 존재하다가
완공 된지 2년만인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되어 파괴되고 만다. 그 후 아랍의 오르마왕이 점령하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터 위에
주후 638년에는 이스람 성전인 모스크를 건축하고 알라신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팔레스틴을 정복한 이슬람은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성전 자리, 즉 성전산위에 이슬람 사원인 바위 돔 사원을 지었는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바위로 즉 성전산이다. 이스람도 무함마드가 승천의 장소라면서 신성시 하고 있다
661년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칼리프는 바위돔 사원의 건축을 계획하였고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Abd al-Malik, 685-705 재위) 때인 691년에 완공되었다.
솔로몬 성전의 중심이었던 거룩한 바위 위에 바위 돔 사원을 지으면서 그리스도교의 예수님 부활 성당의 돔보다 더 높고 웅장하게 만든 이유는
이슬람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반 위에서 탄생 했지만 이 두 종교를 최종적으로 완결하는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61 후인 주후 1099년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사용되었으나,
약 90년 뒤 주후 1187년 아랍에게 다시 점령당하고
주후 1516년 오스만터키의 슐레이만 대제가 성벽과 성문을 튼튼하게 건축하고, 지금까지 모스크를 지키고 있으며, 이스라엘 독립전쟁을 통하여
옛 가나안땅과 예루살렘은 정복하여 이스라엘을 재건하였지만 목숨을 걸고 지키는 모스크만은 회복을 못하고 있다.
이 사원은 돔을 이루는 둥근 틀은 납과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겨울에는 동물의 가죽을 그 위에 덮어
예루살렘의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 얼어붙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바위 돔 사원의 돔 위에 놓인 초승달은 항상 남쪽의 메카 방향을 가리키는데
메카가 아닌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이는 재앙이 일어날 징조라고 무슬림들은 믿는다.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그 초승달을 십자가로 바꿔 놓았지만
1187년 10월 살라딘이 탈환한 뒤 황금으로 만든 초승달을 원래의 위치에 남쪽 방향으로 다시 달아 놓았다.
그 이후 1855년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성전 출입이 금지 되었다.
1993 요르단 후세인왕이 얇은 순금판 1200장으로 돔 위를 입혀 우리는 진짜 황금돔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