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사랴(Caesarea) ☆☆ 가이사리아, 카이사레아, Kaisareia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라서 “Casarea”라고 명명했다는 이곳 지중해와 갈릴리호수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 카파도키아에 있는 세 곳의 도시이름이며 이번에는 지중해 항구도시 가이사랴를 순례지로 방문하였다. 가이사랴는 베드로가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이곳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방인의 전도를 시작한 곳이며(사도행전 10장),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 선교를 위해 이곳에서 떠났으며, 바울은 가이사랴에 2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로마로 호송되어 사형 당했으므로 가이사랴는 바울이 머물렀던 마지막 장소가 되었고, 또한 누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바울과 함께 동행 한 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빌립보에서 바울과 합류하였다가,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함께 옥고를 치렀고, 그리스어에 능통한 누가는 이때 가이사랴에서 자료를 모아 정리하여 이방인 초신자들이 지성적인 신앙인이 되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그 외에도 십자군의 많은 역사적 사건과 건축이 있었고, 이곳에서 가리사랴 신학파가 형성되었다고 하며, 4세기 무렵에는 오리게네스와 유세비오스 등이 이 도시에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헤키사브라'라는 성서 번역도 나온 곳이라고 한다.
지중해 물빛은 너무나 아름답다.
높이 약 20m로 약 2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시대의 반원형 야외극장이 보수되어 음악회 공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 가이사랴(Caesarea) ☆☆
가이사랴는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의 약간 북쪽 중간 지역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페니키아인이 살며 페니키아와 이집트를 잇는 페니키아항구였으며,
시돈(페니키아)의 왕 이름을 따라 “스트라토의 탑(Straton's Tower)” 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기원전 96년 헤스모니안 왕조의 야나이(Alexander Jannaeus)가 정복하여 유대 마을을 일으켰으며
기원전 20년부터 헤롯에 의하여 로마식 도시로 변하였다고 한다.
가이사랴는 헤롯대왕이 기원전 22년부터 약 12년간에 걸쳐 그리스 아테네에 필적할 만한 항구로 건축하기 위하여
건축가들과 조각가들을 동원하여 아직까지도 잘 보존된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궁전들과 웅장한 대리석 신전,
로마 유적중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인 히포드롬(전차 경주가 벌어졌던 로마의 원형 경기장),및 도로, 공공건물, 시장 등을 건설하였으며,
복원된 로마식 야외원형극장은 아직도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롯왕은 가이사랴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갈멜산 남쪽의 샘으로 부터 해안까지 아취로 연결된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위에 깊은 약 20 Km에 이르는 수로를 건설한 수도교도 현재 그 유적이 남아있다.
물의 낙차를 이용한 구조물로서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헤롯대왕은 또한 이곳에 큰 배가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바다를 매립하고 큰 돌로 폭이 약 60m인 반원형 인공부두와
파도가 심한 그곳에 길이 600m와 300m의 거대한 방파제를 건설하여 동부 지중해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심해 항구를 건축하였으며
현재도 해수면 아래로 약간 내려가 있다. 이 고대 항구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을 “Casarea”라고 명명했다.
당시 가이사랴는 식민지 통치와 국제무역항의 중요한 거점도시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디옥과 함께
지중해 주요 3대 항구중의 하나로 유명한 항구가 되었으며 이 지역의 중심도시로,
서기 6년부터 500여 년 동안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이 거주하였으며,
640년 아랍인들이 점령하였다가 1101년 프랑크족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었다.
4세기에 호화로운 공공 건물로 명성이 높았던 가이사랴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6세기에는 로마의 속주 유대 지역의 수도가 되었으며, 로마인들이 유태인 반란을 진압했던 서기 70년에는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의 유적들로는 십자군 시대의 성채, 13세기에 세워진 요새 성벽 등이 있다,
아우구스투스신전, 비잔틴시대의 교회유적, 파수대유적, 시나고그유적, 고대수로와 군영 등이 있으며 현재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헤롯왕이 죽은 후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된 가이사랴는 그 미관 때문에 로마 총독들의 거주지로 선택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본디오 빌라도는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그의 이름이 새겨진 돌판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