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야동상 ☆☆
갈멜산의 최고 높이는 해발 546m이고
엘리야가 거짓 예언자 바알신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한 산봉우리는 482m로 무흐라카라고 하며
이곳에 엘리야 기념교회가 있고 그 정원에 엘리야동상이 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를 밟고 있으며 목을 내려치기 직전의 모습으로
오른손에 들고있는 칼이 구부러저 있는데 우상을 숭배하는 선지자들을 다 죽이느라 구부러졌다고 한다.
교회 뜰에 세워진 엘리야의 동상 앞에서
☆☆ 엘리야( Elijah ) ☆☆
기원전 9세기(B.C. 876-852년경)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아하시야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예언자이자 선지자로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라고 한다.
길르앗에 사는 디셉사람으로 그는 몸에 털이 많았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특별했으며,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여호와 유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구약의 대표적 선지자였다고 한다,
오므리가 사마리아를 수도로 한 오므리 왕조를 구축하고 페니키아와 동맹하면서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그의 아들 아합의 왕비로 맞이하고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주신 바알을 이스라엘에 도입하자
엘리야는 바알 숭배 때문에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들 것이라고 예언한다.
아합을 피하여 광야로 숨은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었으며,
사르밧의 한 과부 집으로 옮겨 살다가 병들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소생시켰으며, 그 가난한 여인의 식량을 늘려주기도 하였다.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이 페니키아의 주신 바알신을 섬기며 여호와 하나님을 박해하자
엘리야는 일어나 아합왕을 설득하여 온 백성과 바알의 예언자들을 갈멜산에 모이게 하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신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서 이들에게 도전을 펼쳤다.
바알 선지자들은 광적인 춤을 추고 칼로 자신들의 몸을 베면서까지 기도하였지만
하늘로부터 응답이 없어 제단 위에 불을 내리는 데 실패하였고 바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에게 호소하자 신은 불을 내려 보내 제단의 제물들을 태워버린다.
엘리야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로 돌아섰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외치고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기손강에서 죽였다.
이스라엘에서는 야훼만이 신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그분과 더불어 계약을 갱신하였고 야훼 예배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스라엘에는 3년 만에 비가 내려 오랜 가뭄이 끝난다.
이후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고 죽지 않고 승천한 구약의 인물이 되었다.
엘리야가 이기자 아합은 전차를 타고 자신의 궁궐을 향해 도망치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걸어서 전차를 탄 아합보다 이스르엘에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이때 왕후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고 선언하자 엘리야는 광야로 피신하여 모세가 신을 만났던 호렙 산(시나이 산)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신이 엘리야에게 나타난다. 강풍이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더니 불이 피어오르면서 '세미한 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이스라엘에 엘리야 이외에도 경건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하며,
하자엘을 아람 임금, 예후를 새 이스라엘 임금으로,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를 예언자로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다.
이후 엘리야는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 그를 후계자로 세웠다.
행동의 예언자이며 전투의 예언자였으나 한편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만을 따르는 고독한 예언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에녹같이 죽지 않고 불의 마차를 타고 회오리바람에 의하여 살아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 승천하였으며,
모세와 더불어 구약시대의 대표적 예언자로 기록되고,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에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보이기도 했다.
세례 요한의 예표적 인물이기도 했으며, 선지자 엘리사의 스승이었으며
엘리사는 엘리야가 간 뒤에도 그의 외투로 요단강의 물을 가르는 기적을 일으킨다.
아합왕은 이즈르엘에 있는 궁전을 크게 확장하기 위하여 궁전 옆에 있던 농부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자
나봇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기 때문에 팔수가 없다고 거절하자 사악한 왕비 이세벨이 술수를 써서 나봇을 거짓 고발하고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고 포도농장을 빼앗게 되자, 엘리야는 오무리 왕조에 대한 신의 심판을 선언했다.
종말 시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재래한다고 믿는 유대인은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엘리야의 재래를 기대하기도 하며,
한편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오는 엘리야로 생각하였다.
☆☆ 엘리야기념교회 ☆☆
☆므흐라카 (Muchlaka,불의 제단), 무후라카(Muhraqah)☆
엘리야 기념교회는 갈멜산 등성이 북동쪽에 엘리야가 희생제물을 바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무흐라카에 있는데,
무흐라카의 뜻은 ‘불의 장소’ 또는 ‘불이 내려온 곳’이라고 하며, 하이파로부터는 약 27Km거리에 있다.
갈멜산은 예로부터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엘리야가 거짓 신인 바알신과 아세라 예언자들과 각자 섬기는 그들의 신중에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지 대결을 벌인 곳으로
엘리야는 이 갈멜산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종교적 위기에서 구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도들도 이 산을 신성하게 여겼으며 예언자 엘리야가 희생제물을 바친 장소로 알려진 무흐라카에
6세기부터 수행자들이 은둔하기 시작하며 갈멜 수도회로 발전하게 된다.
유대 전통은 이 사건이 펼쳐진 곳이 무흐라카임을 항상 인정해 왔고,
이곳에는 12개의 돌로 쌓은 오랜 기념비가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이를 엘리야의 제단이라고 불렀다.
18세기 이후 갈멜회 순례자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으나,
오래 기념해 오던 그 12개의 돌들은 183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현 예배당 자리에는 십자군 시대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큰 바위를 잘라 만든 기도소가 있었으며,
회교도들도 찾아와 예언자 엘리야에 경의를 표하여 촛불을 밝히곤 했다고 하는데 이 기도소는 폐허가 되었고,
1868년에 십자군의 성채가 있었던 곳에 세워진 “므흐라카” 라는 수도원이 자리를 잡았다고 하며,
1883년에 갈멜 수도원을 복원하였고 최근 들어 예배당은 현대식으로 고쳐졌고
성경의 서술에 의거 엘리야가 쌓은 제단을 기념하기 위해 12개의 돌로 된 제단이 세워졌다고 한다.